몇 번이나 다녀온 아리마 온천과 이래저래 다녀온 적이 있는 이세와 키노사키를 제외하면 칸사이에서 가깝게 다녀올 수 있는 온천지는 그렇게 많지 않다. 온천 애호 모임(?)의 가을 정기 투어 장소로 난키 시라하마냐, 효고의 아코우냐를 고민하다 우리는 조금 더 가까운 아코우 온천을 가기로 했는데, 아코우 온천에는 여러 가지 조건-가격, 음식의 질, 식사장소 등-에 적합한 마음에 드는 료칸이 없었기 때문에 약간 못 간 데에 있는 타츠노시의 '카이세키야도 시오리(懐石宿 潮里)'를 고르기까지는 그래서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미용실에서 머리를 볶으면서 아코우 근방에 놀러간다고 했더니 W상이 여행관련 책자를 이것저것 찾아봐주었다. 자동차를 타고 목적지로 향하는 도중에 있는 카코가와시의 시카타에서는 10월중에 코스모스 마츠리가 열리는데, 우리도 덕분에 꽤 드넓은 코스모스밭을 구경할 수 있었다. 그리고 카코가와시의 향토음식이라는 '카츠메시'(카츠동이 아니다)를 먹으러 두 군데 잡지에 실려있던 '잇큐테이'라는 식당에도 들렀다. 이 가게의 카츠메시는 양에 따라서 가격이 정해지는데 먹다 보면 질리기 때문에 가장 작은 사이즈로도 충분했다. 카코가와시 근방에는 카츠메시의 소스도 시판되고 있다고 한다.
목적지인 료칸은 세토 내해를 끼고 있는 작고 조용한 바닷가 마을에 자리하고 있다. 마침 만조 때라 입구의 조그마한 모래밭을 제외하면 철책이 있는 곳까지 물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현관에서 바로 신발을 벗고 들어가서 체크인을 마치자 자그만 응접실 같은 로비에서 차와 서양배로 만든 젤리를 대접해주었다. 객실이 많지는 않아 보이는 아담한 료칸인데, 바닷가를 잠시 산책한 후 삼층의 욕탕에 들어갔다가 우리는 놀라고 말았다. 일반적인 규모의 온천 료칸에서라면 카시키리로 사용될 만큼 욕탕이 작았던 거다. 남탕-여탕을 아침저녁 교대로 쓰는 시스템도 아니었지만, 아마 굳이 그렇게 할 필요도 없을 만큼 남탕도 넓이나 구조가 똑같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홈페이지에 실려 있는 사진처럼 베란다에 있는 작은 나무탕에서는 보는 바다 풍경은 정말로 좋다.
사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바닷가 료칸의 주력은 온천에 있는 게 아니라, 아마 매달 바뀌는 카이세키 요리에 있을 것이다. 아코우 온천처럼 이 곳도 해산물을 중심으로 한 꽤 공들인 요리를 내오는데, 식사가 방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식당의 개별실에서 바다를 보며 조용히 즐길 수 있다. 10월의 메뉴로는 우선 식전주인 우메 와인과 함께 캐비어와 밤 따위를 얹은 은행두부, 식초에 절인 갈치와 데친 새우, 이런저런 나물 종류를 요리한 것이 전채로 나온 다음, 갯장어와 송이버섯 따위가 든 도빙무시(주전자 찜?)가 나왔다. 그리고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대충 회-구운 소고기-삶은 생선요리- 찜요리-식초요리 순으로 요리가 나온다.

회는 종류도 몇 가지 되는 데다 말할 것도 없이 신선하고 맛있었는데, 평소에는 보지 못하던 소라회가 인상적이었다. 오독오독거리는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전복회도 즐기지 않는 나에게는 사실 소라는 구워먹어야 하는 식재료. 구이는 쇠고기와 새우, 농어 따위를 버터와 된장으로 양념해서 사기로 된 판 위에서 굽는 것이었는데, 소주나 일본주로 할까 고민하다 맥주를 반주로 선택한 나는 이때쯤부터 벌써 배가 아주 불러서 제대로 먹어내지를 못했다. 삶은 요리로 나온 것은 아래 사진에 있는 '아코우'라는 생선. '石茂魚'라 쓰는데, 이 생선의 이름을 아무리 해도 읽을 수 없어서 결국 조추상에게 물어보았다. 이 근방에서 곧잘 나는 고급 생선인 모양이다. 하지만 사실 나는 익힌 생선맛은 거짓말을 좀 보태면 고등어와 갈치밖에 구분을 못하는 사람이라. 찜요리로는 도미와 보리 그리고 포아그라를 조금 넣고 푹 삶은 듯한 죽 같은 음식이 나왔던 것 같은데, 포아그라도 싫고 배도 불러서 거의 남겨야만 했다. 재미있던 것은 식초요리. 꽁치 초밥은 그대로 남겼지만 갯가재와 해삼을 초무침한 것은 그럭저럭 특이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나는 이쯤에서 완전히 다운됐기 때문에 이후에 나온 조개관자랑 밤이 든 밥을 거의 즐기지 못한 게 아쉽다. 카이세키는 밥과 된장찌개, 채소절임으로 마무리를 해줘야 하는 건데.


비용면에서 생각하면 일인당 숙박비가 비슷할 경우 아리마 온천 같은 유명한 곳에서는 좀 누리기 힘든 요리를 맛볼 수 있었기 때문에 온천이 하나밖에 없고 아주 작더라도 조용하고 괜찮은 료칸이었다. 비수기라서 그런지 탕도 카시키리나 다름없었기도 했는데, 다만 성수기에 객실이 가득 차기라도 하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다음 날 아침식사는 늘 그렇듯이 두세 그릇을 뚝딱 비웠고, 아침에 입욕했을 때에는 베란다 바깥으로 물이 완전히 빠진 바다를 보고 깜짝 놀랐다. '潮里'라는 이름처럼, 물이 차고 빠지는 것을 방이나 욕탕 바깥에서 언제든지 내다볼 수가 있는 곳이다. 히메지에서는 차로 사십분쯤 걸리니까 아코우에 비하면 접근성도 좋은 편이지만, 이 근방에는 그렇게 가볼 만한 곳이 없어서 부지런하고 바쁜 관광객들에게 추천하기는 좀 그렇겠다. 그런 면에서는 코베 시내, 그리고 좀 힘내면 롯코산이나 마야산 및 목장을 둘러볼 수가 있는 아리마 온천이 역시 놀러오는 친구들과 같이 가기에는 좋다. 엔고의 영향인지 요 일 년 친구들이 다녀가지 않는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