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26일
학생의 본분
1. 학기가 시작되었지만 별다른 의욕은 생기지 않는다. 이젠 연구실 술자리도 지겹다고 생각하게 됐는데, 수요일에는 한 달에 한번 있는 남의 세미나 뒷풀이에 갔다가 또 술에 취해서 폭주를 했다. 이제 일본 모대학 사회학과 연구실 박사(후)과정생들은 내가 대단한 외모지상주의자라고 생각하고 있을 거다. 하지만 나는 최소한 완벽하게 아름다운 가슴이 어떻고 이제 막 만든 듯한 귀가 어떻고 하는 스타일로 사람의 외모를 판단하지는 않는다. I 선생님이 책의 내용으로 보아 날카로운 분위기의 사람이리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배가 많이 나온 후덕한 아저씨 인상이어서 놀랐다든지, Y 선생님은 말하는 것도 철두철미 논리적인데다 왠지 멋있었다고 솔직히 토로하는 게 뭐가 어때서. 나는 아름다운 외모가 아름다운 정신을 보여준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어느 정도 나이가 먹으면 외모에서 나름의 인간적인 개성을 드러낸다고 여길 뿐이다. 그리고나서 나는 몇 차례 이야기도 나눠보지 않은 사람에게서 '이런 사람일 줄은 몰랐다'라는 감탄사를 끌어냈다. 이유는 내가 너무나 자본주의적인 꿈을 꾸고 있었기 때문이다. 멀쩡한 기업에 취직해서 일하면서 삼십년 대출을 내어 집을 사고 나 하나만을 정말로 사랑하는 남자가 나에게 "당신은 논문 같은 것은 쓰지 않아도 되고 연구업적 따위를 쌓을 필요도 없다. 모든 뒷받침은 내가 해줄 테니 좋아하는 책을 마음껏 읽으라!"고 말해준다면 난 기꺼이 전업주부를 할 수도 있겠다고 말했더니 말이다. '판타지'에도 여러 가지 방향이 있다고 그는 말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누구처럼 유토피아, 레볼루션을 꿈꾸겠나.
그들의 모임에서는 T 선생님의 가치관이 문제시됐다. 예컨대 내가 어떤 판단미스로 인해 모 모임의 집행위원회 비슷한 데 옵저버로 참석하게 됐을 때, 그 모임의 제도화를 경제적 부분을 포함한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한 모 교수의 의견에 대해 T 선생님은 "돈 문제는 일단 놔두고"라며 말을 꺼냈다. 물론 모 교수는 "...하는 데에 얼마나 돈이 드는지 알고는 있느냐"고 따끔하게 응수했는데, 나는 이 교수의 주장이 정말로 일일이 지당하신 말씀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나에게 발언권이 돌아왔을 때 나도 제도화는 찬성하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 그들은 나야말로 T 선생님의 문제점을 지적해야만 한다고 영문을 모를 주장들을 했다. 그러니까 아마도 우리들에게 돈 문제는 "일단 놔둘"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내년 혹은 내일 점심을 사먹을 수 있을지 없을지라곤 일생에 단 한번도 고민해본 적이 없는 그가 보여주는 래디컬함은 그 기반이 취약하다는 것을? 그리고 모두 모 교수가 타당하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하지만 제도화는 많은 문제를 해결하고 모임을 안정화할 뿐만 아니라 문부성 혹은 '그들'이 내심 바랄만한 결론이기도 하기에, 그 근거가 얼마나 타당하든(아니면 너무나 타당하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나는 결국 T 선생님을 지지했다. 예전에 나는 부유층의 자신의 계급적 이익에 근거한 정치적 선택은 차라리 합리적이라는 점에서 이해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곤 했지만, 그런 사람들에 비하면 T 선생님은 단순히 배고픈 현실을 모른다고 폄훼하기에는 너무나 품위가 있는 사람이다.
2. 마키메 마나부의 『프린세스 토요토미』와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을 읽었다. 원래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전혀 좋아하지 않는데, 순문학 범주에 들어가는 작가의 작품이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되는 현상의 현실적인 압력은 좀 무시하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책을 직접 사기는 싫었기에 친구의 친구에게 빌려서 결국 단숨에 읽어내린 결과, 하루키의 책은 여전히 읽히기는 참 잘 읽힌다는 사실(이시바시에서 카와라마치까지 오는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며 술에 취한 상태에서조차 집중력을 유지하며 읽을 수가 있다)과 함께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작가의 딱히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는 작품을 그것이 베스트셀러라는 이유만으로 구태여 읽어볼 필요성이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퍼시버와 리시버라니 당연히 얘들도 '다의적으로' 교접하겠구나 생각했더니 정말 그렇더라. 후카에리는 매우 아름답고 커뮤니티에서 리틀 피플을 만났는데 얘가 사실은 특별한 존재라 퍼시버 역할을 할 수 있단 설정을 제외하면 달리 뭐가 있는지 모르겠고(하긴 미소녀에 가슴은 크지만 털은 없고 커지는 것도 문제삼지 않는 데다 완전 새것 같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교접'을 해주는구나), 언제나 그렇듯이 하루키의 등장인물들은 결코 절대로 네버 사랑스럽지 않다. 여기에 낚여서 리틀 피플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이냐, 1Q84의 의미는 무엇이냐, 공기 번데기는 무엇을 뜻하느냐를 진지하게 생각해보기에는 나에게는 달리 고민해야 할 문제가 많다. 단지 내가 사는 세상은 달이 하나뿐이라서 다행일 뿐이다. 하지만 이 작품이 그렇게나 팔리면서 호시노 토모유키 등이 안 팔리는 이유가 뭔지 솔직히 궁금해.
『프린세스 토요토미』는 앞 삼분의 일 정도는 그냥저냥 흥미있게 읽다가 중간 삼분의 일 정도에서 급속도로 따분해지더니 마지막 삼분의 일에 들어가서는 다소의 짜증스러움을 느낄 수 있었다. 마키메 마나부의 서술 방식이 아주 '쿠도이'해서 아마 더할 것이다. 아무튼 오사카 사람들이 왜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핏줄을 보호했느냐, 그들은 왜 토쿠가와 막부에 내심 반기를 들었느냐, 그리고 아무도 그 사실을 밀고하지 않았느냐. 그 이유는 아마 결론적으로 말하면 책에도 등장하듯이 이 동네는 우리의 것이며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우리 동네 사람이고 토쿠가와는 딴 동네 사람('요소모노')이라서 그렇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정말 설득력이 있다. '요소모노'-그것은 마법의 말이다. 나는 회계감사원의 마츠다이라가 오사카국을-거기 모인 오사카 아저씨들을!- 무찌를 수 있길 열심히 바랐지만, 사실은 얘도 우리 동네 사람이었던 것이다...... 결국 오사카국의 목적은 아버지와 아들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선지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후예를 끝까지 보호하기 위해서인지 애매모호한 채로 일본국의 막대한 예산은 오사카 남자들의 잘 알 수 없는 끈끈한 연대를 위해서 흘러들어가는 셈이다. 세상에! (실제 세상이었음 내가 소비세란 명복으로 지불하는 세금도 거기에 포함되는 거 아닌가.) 거기다 오사카는 너희들만의 것이 아니라고 나는 정말로 말해주고 싶었다. 오사카 여자들만 어떻게 포용하면 될 문제라고 생각했더냐. 하긴 토쿠가와 이에야스도 딴 동네 사람인 판에 오사카를 왔다갔다 하는 수많은 비일본인들은 오사카성에 놀러오는 관광객들로밖에 보이지 않겠지만. 음. 아마도 나는 쿄토에 비해서 오사카를 많이 사랑하지 않는 모양이다. 모리미 토미히코의 소설에서 쿄토에 대한 부분을 읽을 때마다 가슴이 설레건만. (그리고 너무너무 아름다워서 사람들이 다 깜짝 놀라는 매우 특별한 여성을 등장시키는 것까진 그래도 좋다 쳐도 그에 대한 한두 번도 아니고 몇 번이나 반복되는 지루한 묘사는 어떤 소설에서든지 좀 안 보고 싶다. 차라리 공주님이나 연예인을 등장시키든가.)
그들의 모임에서는 T 선생님의 가치관이 문제시됐다. 예컨대 내가 어떤 판단미스로 인해 모 모임의 집행위원회 비슷한 데 옵저버로 참석하게 됐을 때, 그 모임의 제도화를 경제적 부분을 포함한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한 모 교수의 의견에 대해 T 선생님은 "돈 문제는 일단 놔두고"라며 말을 꺼냈다. 물론 모 교수는 "...하는 데에 얼마나 돈이 드는지 알고는 있느냐"고 따끔하게 응수했는데, 나는 이 교수의 주장이 정말로 일일이 지당하신 말씀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나에게 발언권이 돌아왔을 때 나도 제도화는 찬성하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 그들은 나야말로 T 선생님의 문제점을 지적해야만 한다고 영문을 모를 주장들을 했다. 그러니까 아마도 우리들에게 돈 문제는 "일단 놔둘"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내년 혹은 내일 점심을 사먹을 수 있을지 없을지라곤 일생에 단 한번도 고민해본 적이 없는 그가 보여주는 래디컬함은 그 기반이 취약하다는 것을? 그리고 모두 모 교수가 타당하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하지만 제도화는 많은 문제를 해결하고 모임을 안정화할 뿐만 아니라 문부성 혹은 '그들'이 내심 바랄만한 결론이기도 하기에, 그 근거가 얼마나 타당하든(아니면 너무나 타당하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나는 결국 T 선생님을 지지했다. 예전에 나는 부유층의 자신의 계급적 이익에 근거한 정치적 선택은 차라리 합리적이라는 점에서 이해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곤 했지만, 그런 사람들에 비하면 T 선생님은 단순히 배고픈 현실을 모른다고 폄훼하기에는 너무나 품위가 있는 사람이다.
2. 마키메 마나부의 『프린세스 토요토미』와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을 읽었다. 원래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전혀 좋아하지 않는데, 순문학 범주에 들어가는 작가의 작품이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되는 현상의 현실적인 압력은 좀 무시하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책을 직접 사기는 싫었기에 친구의 친구에게 빌려서 결국 단숨에 읽어내린 결과, 하루키의 책은 여전히 읽히기는 참 잘 읽힌다는 사실(이시바시에서 카와라마치까지 오는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며 술에 취한 상태에서조차 집중력을 유지하며 읽을 수가 있다)과 함께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작가의 딱히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는 작품을 그것이 베스트셀러라는 이유만으로 구태여 읽어볼 필요성이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퍼시버와 리시버라니 당연히 얘들도 '다의적으로' 교접하겠구나 생각했더니 정말 그렇더라. 후카에리는 매우 아름답고 커뮤니티에서 리틀 피플을 만났는데 얘가 사실은 특별한 존재라 퍼시버 역할을 할 수 있단 설정을 제외하면 달리 뭐가 있는지 모르겠고(하긴 미소녀에 가슴은 크지만 털은 없고 커지는 것도 문제삼지 않는 데다 완전 새것 같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교접'을 해주는구나), 언제나 그렇듯이 하루키의 등장인물들은 결코 절대로 네버 사랑스럽지 않다. 여기에 낚여서 리틀 피플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이냐, 1Q84의 의미는 무엇이냐, 공기 번데기는 무엇을 뜻하느냐를 진지하게 생각해보기에는 나에게는 달리 고민해야 할 문제가 많다. 단지 내가 사는 세상은 달이 하나뿐이라서 다행일 뿐이다. 하지만 이 작품이 그렇게나 팔리면서 호시노 토모유키 등이 안 팔리는 이유가 뭔지 솔직히 궁금해.
『프린세스 토요토미』는 앞 삼분의 일 정도는 그냥저냥 흥미있게 읽다가 중간 삼분의 일 정도에서 급속도로 따분해지더니 마지막 삼분의 일에 들어가서는 다소의 짜증스러움을 느낄 수 있었다. 마키메 마나부의 서술 방식이 아주 '쿠도이'해서 아마 더할 것이다. 아무튼 오사카 사람들이 왜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핏줄을 보호했느냐, 그들은 왜 토쿠가와 막부에 내심 반기를 들었느냐, 그리고 아무도 그 사실을 밀고하지 않았느냐. 그 이유는 아마 결론적으로 말하면 책에도 등장하듯이 이 동네는 우리의 것이며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우리 동네 사람이고 토쿠가와는 딴 동네 사람('요소모노')이라서 그렇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정말 설득력이 있다. '요소모노'-그것은 마법의 말이다. 나는 회계감사원의 마츠다이라가 오사카국을-거기 모인 오사카 아저씨들을!- 무찌를 수 있길 열심히 바랐지만, 사실은 얘도 우리 동네 사람이었던 것이다...... 결국 오사카국의 목적은 아버지와 아들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선지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후예를 끝까지 보호하기 위해서인지 애매모호한 채로 일본국의 막대한 예산은 오사카 남자들의 잘 알 수 없는 끈끈한 연대를 위해서 흘러들어가는 셈이다. 세상에! (실제 세상이었음 내가 소비세란 명복으로 지불하는 세금도 거기에 포함되는 거 아닌가.) 거기다 오사카는 너희들만의 것이 아니라고 나는 정말로 말해주고 싶었다. 오사카 여자들만 어떻게 포용하면 될 문제라고 생각했더냐. 하긴 토쿠가와 이에야스도 딴 동네 사람인 판에 오사카를 왔다갔다 하는 수많은 비일본인들은 오사카성에 놀러오는 관광객들로밖에 보이지 않겠지만. 음. 아마도 나는 쿄토에 비해서 오사카를 많이 사랑하지 않는 모양이다. 모리미 토미히코의 소설에서 쿄토에 대한 부분을 읽을 때마다 가슴이 설레건만. (그리고 너무너무 아름다워서 사람들이 다 깜짝 놀라는 매우 특별한 여성을 등장시키는 것까진 그래도 좋다 쳐도 그에 대한 한두 번도 아니고 몇 번이나 반복되는 지루한 묘사는 어떤 소설에서든지 좀 안 보고 싶다. 차라리 공주님이나 연예인을 등장시키든가.)
# by | 2009/10/26 01:57 | 편중된 독서취향 | 트랙백 | 덧글(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