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0월 30일
훌라걸스
이삼주쯤 전인가 텔레비전에서 방영한 것을 계기로 -그것은 장보느라 결국 놓쳤지만- 뒤늦게 <훌라걸스>를 봤다. 영화는 거의 내러티브 중심(+배우들)만으로 본다는 자신의 한계 때문에 몰랐는데 <식스티 나인>이랑 같은 이상일 감독의 작품이란다. 사실 누군가가 같이 보자고 하지 않았으면 아마도 보지 않고 넘어갔을 영화라, 놀랍게도 나는 언젠가 들었으리라 추측되는 영화 관련의 모든 정보를 잊어버리고 오로지 아오이 유가 출연한다는 것 하나만 기억하고 있었다.
영화의 배경은 몰락해가는 탄광마을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야기가 물론 <제르미날>처럼 흘러가는 것은 아니고, 그래도 이 탄광마을에는 꿈과 희망이 있다. 탄광마을의 여자아이들은 동기야 어떻게 되었든 그런 꿈과 희망을 가지고 '토호쿠의 하와이'를 위한 훌라댄스를 시작한다. 벌거벗고 엉덩이를 흔든다는 공포 때문에 처음 시작한 멤버는 단 네 사람뿐이었지만, 탄광의 대대적인 인원삭감을 계기로 자신의 한몸을 희생해서 집안을 살리겠다는 갸륵한 목표를 가진 소녀들이 모여든다. 그뒤로는 여러 가지 내외적 갈등을 겪어가다가 성공적인 훌라댄스 팀으로 거듭나고, 결국 키미코(아오이 유)와 어머니의 화해를 거쳐 대립하던 탄광과 하와이도 하나로 어우러지면서 감동적인 훌라댄스 공연장면으로 마무리되는 평범하다면 평범한 영화이다.
<하나와 앨리스>에서도 그랬지만 아오이 유가 춤추는 장면은 참 감동적이다. 하지만 역시 주인공은 빚 때문에 반쯤 울며겨자먹기로 훌라댄스를 가르치러 이 시골까지 흘러들어오게 된 히라야마 마도카(마츠유키 야스코)일 것이다. 자주 등장하는 '일산일가(一山一家)'라는 글귀가 보여주듯이, 시골마을 사람들은 가족과 같은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살고 있다(고 여긴다). 토쿄에서 왔다는 화려한 복장을 한 춤선생은 그곳에 갑자기 들어온 외부적인 요소이다. 그녀는 처음에 이 공동체의 규율에는 관심이 없다. 탄광에서 해고되고 집에 돌아왔다가 딸의 훌라댄서 복장을 보고 줘패는 것으로 모자라 머리카락까지 잘라놓는 아버지에게 격노한 그녀는 남탕에까지 쳐들어가서 그를 응징하려고 한다. (이 장면도 재미있다. 탄광에서 해고된 노동자는 피억압자이지만, 그는 집에 오면 딸을 마음대로 패줘도 되는 지배자가 된다.) 탄광에서 사고가 나고 훌라댄서 팀의 가족 가운데서도 희생자가 생겼을 때, 그들을 둘러싼 외부적 현실에 대해 쌓이고 쌓였던 분노는 자연히 그녀에게 향한다. (<박치기>에서 등장했던 장례식에서 일본 청년을 쫓아내는 장면과도 크게 다르지는 않은 맥락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히어로 스페셜>을 보면서도 느낀 적이 있지만, 이런 장면을 볼 때마다 목가적인 공동체라는 것이 타자(로 상정된 존재)를 배제하는 데 얼마나 대단한 단결력을 발휘하는지는 놀랍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것 때문에 시골 공동체를 좋아하지 않는데, 어쨌든 탄광촌의 소녀들과 접촉하는 가운데 스스로도 조금씩 변화한 마도카는 스스로 물러서기로 결심한다.
그 뒤의 장면은 그럭저럭 감동적이다. 소녀들이 전부 선생님을 찾으러 플랫폼으로 나오고, 그녀는 평소의 그녀답게 그것을 낯뜨겁게 여긴다. 그러나 곧 키미코를 시작으로 소녀들은 가장 처음에 그녀에게서 배운 수화와 같은 춤동작을 시작한다. 그렇게 해서 마도카도 마을에 남게 되고, 춤추는 신체의 아름다움은 키미코의 어머니의 마음도 돌려놓아서 이번에는 마을 사람들도 자발적으로 야자수를 따뜻하게 하는 데 협력하게 된다. 이렇게 이야기는 현실의 문제들을 어느 정도 남겨놓고도 낙관적인 결말을 맞이하는데, 결국 마을과 도시에서 흘러온 외부인 마도카가 조금씩 서로 이해해가는 과정에서 마도카가 공동체의 일원으로 거듭나고 또 받아들여지는 흐름은 마음에 걸린다. 게다가 그런 마도카를 두고 '좋은 여자가 되었구나' 하는 감상이 토로되어도 될 정도로, 이 영화는 탄광마을의 소녀들뿐만 아니라 마도카 자신의 성장 이야기이기도 한 것이다. 적어도 영화는 그렇게 그녀가 변화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인다. 오만하고 제멋대로인 도시의 젊은 여자에서 어엿한 공동체의 성인으로. 그리고 이게 바로 좋은 결말이다. 이럴 때는 역시 댄스의 강렬한 영상이 이 영화의 가장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거울을 보면서 괜히 엉덩이를 흔들어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들을 해보았다.
영화의 배경은 몰락해가는 탄광마을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야기가 물론 <제르미날>처럼 흘러가는 것은 아니고, 그래도 이 탄광마을에는 꿈과 희망이 있다. 탄광마을의 여자아이들은 동기야 어떻게 되었든 그런 꿈과 희망을 가지고 '토호쿠의 하와이'를 위한 훌라댄스를 시작한다. 벌거벗고 엉덩이를 흔든다는 공포 때문에 처음 시작한 멤버는 단 네 사람뿐이었지만, 탄광의 대대적인 인원삭감을 계기로 자신의 한몸을 희생해서 집안을 살리겠다는 갸륵한 목표를 가진 소녀들이 모여든다. 그뒤로는 여러 가지 내외적 갈등을 겪어가다가 성공적인 훌라댄스 팀으로 거듭나고, 결국 키미코(아오이 유)와 어머니의 화해를 거쳐 대립하던 탄광과 하와이도 하나로 어우러지면서 감동적인 훌라댄스 공연장면으로 마무리되는 평범하다면 평범한 영화이다.
<하나와 앨리스>에서도 그랬지만 아오이 유가 춤추는 장면은 참 감동적이다. 하지만 역시 주인공은 빚 때문에 반쯤 울며겨자먹기로 훌라댄스를 가르치러 이 시골까지 흘러들어오게 된 히라야마 마도카(마츠유키 야스코)일 것이다. 자주 등장하는 '일산일가(一山一家)'라는 글귀가 보여주듯이, 시골마을 사람들은 가족과 같은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살고 있다(고 여긴다). 토쿄에서 왔다는 화려한 복장을 한 춤선생은 그곳에 갑자기 들어온 외부적인 요소이다. 그녀는 처음에 이 공동체의 규율에는 관심이 없다. 탄광에서 해고되고 집에 돌아왔다가 딸의 훌라댄서 복장을 보고 줘패는 것으로 모자라 머리카락까지 잘라놓는 아버지에게 격노한 그녀는 남탕에까지 쳐들어가서 그를 응징하려고 한다. (이 장면도 재미있다. 탄광에서 해고된 노동자는 피억압자이지만, 그는 집에 오면 딸을 마음대로 패줘도 되는 지배자가 된다.) 탄광에서 사고가 나고 훌라댄서 팀의 가족 가운데서도 희생자가 생겼을 때, 그들을 둘러싼 외부적 현실에 대해 쌓이고 쌓였던 분노는 자연히 그녀에게 향한다. (<박치기>에서 등장했던 장례식에서 일본 청년을 쫓아내는 장면과도 크게 다르지는 않은 맥락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히어로 스페셜>을 보면서도 느낀 적이 있지만, 이런 장면을 볼 때마다 목가적인 공동체라는 것이 타자(로 상정된 존재)를 배제하는 데 얼마나 대단한 단결력을 발휘하는지는 놀랍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것 때문에 시골 공동체를 좋아하지 않는데, 어쨌든 탄광촌의 소녀들과 접촉하는 가운데 스스로도 조금씩 변화한 마도카는 스스로 물러서기로 결심한다.
그 뒤의 장면은 그럭저럭 감동적이다. 소녀들이 전부 선생님을 찾으러 플랫폼으로 나오고, 그녀는 평소의 그녀답게 그것을 낯뜨겁게 여긴다. 그러나 곧 키미코를 시작으로 소녀들은 가장 처음에 그녀에게서 배운 수화와 같은 춤동작을 시작한다. 그렇게 해서 마도카도 마을에 남게 되고, 춤추는 신체의 아름다움은 키미코의 어머니의 마음도 돌려놓아서 이번에는 마을 사람들도 자발적으로 야자수를 따뜻하게 하는 데 협력하게 된다. 이렇게 이야기는 현실의 문제들을 어느 정도 남겨놓고도 낙관적인 결말을 맞이하는데, 결국 마을과 도시에서 흘러온 외부인 마도카가 조금씩 서로 이해해가는 과정에서 마도카가 공동체의 일원으로 거듭나고 또 받아들여지는 흐름은 마음에 걸린다. 게다가 그런 마도카를 두고 '좋은 여자가 되었구나' 하는 감상이 토로되어도 될 정도로, 이 영화는 탄광마을의 소녀들뿐만 아니라 마도카 자신의 성장 이야기이기도 한 것이다. 적어도 영화는 그렇게 그녀가 변화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인다. 오만하고 제멋대로인 도시의 젊은 여자에서 어엿한 공동체의 성인으로. 그리고 이게 바로 좋은 결말이다. 이럴 때는 역시 댄스의 강렬한 영상이 이 영화의 가장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거울을 보면서 괜히 엉덩이를 흔들어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들을 해보았다.
# by | 2007/10/30 20:42 | 나름대로 취미생활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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