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짧은 토쿄 감상

3월 10일. 셋째 날.
토쿄로 다시 돌아와서 짐을 풀어놓은 후 동행과 함께 늦은 점심을 먹으러 말로만 듣던 긴자에 갔다. 제법 유명하다는 '츠바메그릴'이라는 햄버그 전문점이었는데, 어쩐지 가게 안의 연령층은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굶주렸기도 했지만 조그만 토마토 하나가 통째로 나온 이 가게 특제 샐러드는 감동할 정도로 맛있어서, 메인인 햄버그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다. 늘 그렇듯이 허덕거리다가 입천장을 데었던 기억이 있다.

점심을 먹은 후에는 화장품을 산다는 동행을 따라 긴자의 메인 스트리트를 걸어서 백화점에 들어갔다. 가끔 남바의 다이마루 백화점이나 쿄토역의 이세탄에 갈 때도 느끼지만, 나는 이상하게 백화점에 들어가면 내가 거기서 물건을 살 리가 없다는 데 대해서 면목이 없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느낌 탓인지 화장품 코너의 판매직원들까지도 하나같이 예쁘고 도도한 느낌이 들어서 나는 또 살짝 주눅이 들었는데, 이것이 어쩔 수 없는 촌사람 기질인지도 모르겠다. 찾는 물건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백화점을 나와 덴츠와 파나소닉 건물이 우뚯 솟아있는 심바시 방면까지 걸어갔다.
니혼테레비 근처의 커피집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보다가 동행은 돌아가고 나는 유학 와 있는 지인을 만나서 덴츠 지하에 있는 카렛타라는 곳에 들어갔다. 예전에 여러 가지로 많이 신세를 지기도 해서 이 날만큼은 내가 대접하겠다고 마음 먹었던 차였는데, 카렛타에 입점해있는 가게들은 사실 덴츠나 니혼테레비에서 일하는 세련된 직장인들이 찾는 곳이라서인지 분위기와 맛은 괜찮았던 반면 나의 경제적 수준을 살짝 우회하기도. 어쨌든 괜찮은 이자카야에서 정종을 몇 병 비우고 프론토에 옮겨서 생맥주를 마신 후 귀가.

3월 11일. 넷째날. 원래는 책이나 보면서 쉴 계획이었는데, 아침부터 날씨가 무척 좋았다. 마침 텔레비전에서 반짝반짝하는 쇼난의 바다를 비춰주는 것을 보고 동행과 나는 즉시 에노시마로 떠날 것을 결의했다. 하지만 시간은 벌써 늦은 오전이었기 때문에, 신주쿠까지 가서 프리패스를 끊은 다음 오다큐를 타고 에노시마역에 내렸을 때에는 이미 점심 무렵이 상당히 지난 시간이었다. 문 밖에까지 길게 줄을 선 맥도널드에서 테리타마버거를 해치운 뒤, 느긋하게 대교를 건너서 에노시마로. 에노시마에서는 우선 신사까지 올라가 거의 산을 한바퀴 돈 다음, 목적지였던 치고가타니에 도착했다. 소문대로 에노시마에는 고양이들이 많아서 우리는 열 마리가 넘게 셀 수 있었지만, 사실 연인들은 그보다 더 많았다. 치고가타니에서는 마침 밀물 때여서 파도를 뒤집어쓰고 깔깔거리는 젊은 연인을 어쩐지 흐뭇한 마음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해 지는 풍경이 그렇게 좋다더니, 초저녁에 우리가 다시 돌아내려갈 무렵에도 넘어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치고가타니까지 내려가는 길은 그럭저럭 힘든지 마주친 사람들은 하나같이 헉헉대고 있었는데, 돌아올 때에는 동행과 나도 헉헉대면서 기어올라가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우리가 그랬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겁을 먹었다. 에노시마를 나올 때에는 이미 저녁 시간이라 괜히 에노덴을 타고 카마쿠라역까지 간 다음 다시 돌아왔다. 나는 슬램덩크 팬은 아니었지만, 그 대신 바다를 보면서 달리는 에노덴에서는 언젠가 보았던 <푸른 불꽃>의 한 장면을 떠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마을 한가운데를 달리는 전차라면 우리의(?) 에이덴도 그 로맨틱함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다.)

3월 12일. 다섯째날에는 오랜만에 오다이바를 찾을 예정이었다. 츠키시마에서는 심바시로 가서 유리카모메를 탈 수 있지만, 나는 오다이바와 시나가와를 5분만에 바다 밑으로 연결한다는 『동경만경』에 등장했던 그 린카이선이 타고 싶었다. 신키바에서 텐노즈아일까지의 텅텅 비다시피 한 린카이선은 상당히 만족스러운 선택이었다. 하마마츠에서 모노레일을 탈 수 있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텐노즈아일역에서 일단 내려 홈에서부터 짙게 풍겨오는 바다 냄새를 맡았을 때에는 꽤 가슴이 뛰기도 했다. 텐노즈아일에서 뛰어간다고 한들 료스케가 살고 있는 것은 아니겠으나.
 

동행은 예전에 우리가 함께 비너스포트에 간 적이 있다고 주장했고 그 증거로 사진이 존재한다고 단언하기도 했지만, 나는 친구들의 사진에서 본 비너스포트가 마냥 새롭게 느껴졌다. 카레가 맛있다는 키라쿠테이에서 매운 카레를 먹은 뒤 쇼핑의 욕구를 뿌리치고 미디어쥬로 걸어가는데, 오다이바의 빌딩풍은 정말로 대단했다. 요근래의 온기가 거짓말같이 느껴지는 강추위였다. 미디어쥬에서는 근래 개봉한 영화 <쿠로사기>를 보는 것이 주목적이었으나, 나에게는 건너편 연안의 부둣가를 보고싶다는 또다른 목적도 있었다. 밤이 되면 레인보우브릿지가 반짝거리고 저 멀리 토쿄타워가 빛을 발하는 오다이바의 야경을 몇 년만에 다시 바라보는 것은 무척이나 설레고 좋았지만, 삐죽삐죽 솟은 크레인과 대도시의 회색풍경을 바라보면서 괜히 소설의 장면, 장면들을 떠올리는 것도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나와는 동떨어져 있는 대도시의 풍경이나 손에 잡힐 듯한 부둣가에서 일하고 있을 사람들이나, 요시다 슈이치가 아니었다면 아마 생각해보지 앉았을 이런저런 대도시 이야기들.

영화 <쿠로사기>는 영화의 내용만 가지고 객관적으로 평가하자면 동행이 평했듯이 '오백엔이라면 만족'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군더더기가 많은 데다 좀처럼 클라이맥스에 달하지 못하는 느낌이었고, 카토와 같은 그리운 조연을 다시 볼 수 있는 것은 좋았지만 '영화는 역시 니혼테레비 제작부가'라는 동행의 평가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물론, 야마삐를 대형화면에서 보겠다는 나의 바람을 충분히 만족시켜주었다. 영화가 끝나고 NEWS의 신곡을 들으면서는 나의 쟈니즈 편력은 결국 야마삐로 회귀하는 거였나라는 감회에... 영화를 보고 나오니 아직 이른 시간인데도 오다이바는 이미 한밤중이 되어있었다.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심바시와는 반대방향의 유리카모메 앞좌석에 앉아, 인적이 드문 도시 위를 떠 가는 레일을 보며 제트코스터라도 탄 듯 흥분하면서 나와 동행은 토요스로 돌아왔다. 오랜만의 기분 좋은 토쿄휴일은 이렇게 마무리. 신나는 며칠간을 보내고 돌아오니, 정말로 오사카는 봄기운이 가득하다.

 

by loki | 2008/03/28 01:07 | 두서없는 잡담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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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8/03/29 00:1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loki at 2008/03/30 22:54
오늘 시점에서 삼일이 하루로...
그래도 멋있는 생활이 될 것 같다는 건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의 느낌인가?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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