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8일 요요기공원

토쿄에서 열흘쯤 머무는 김에, 빅뱅의 일본 발매 싱글을 두 장 산 김에, 메이저 데뷔 기념행사를 한다는 요요기공원에 한번 가보기로 가볍게 마음을 먹은 게 아마 실패(?)의 원인일 것이다. 좀 더 결심을 확고하게 하고 당일 새벽부터 가서 줄을 서든가 아니면 그냥 텔레비전 스케줄이나 체크하면 됐을 텐데, 마침 내가 토쿄에 와 있는 기간에 이벤트를 한다는 게 뭔가 대단한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비너스포트에서 했던 행사도 예상 외의 인원이 몰려오는 바람에 허둥지둥 끝내고 말았다는 이야기는 후지 테레비의 아침 방송에서 봤지만, 그래도 나는 입장권은 오전 열한 시 반부터 랜덤으로 배부하니 철야를 하거나 이른 아침부터 요요기공원에서 얼쩡거리지 말라는 주최측의 안내를 너무 순진하게 믿었던 것 같다.

방 주인이 출근할 때 같이 집을 나서서 천천히 지하철을 세 번 갈아탄 다음 요요기공원역에서 내린 뒤 한 이십 분 방향을 몰라서 헤매다가 열 시 반쯤에 야외음악당 앞에 들어갔을 때에는 아마 한 이천 명은 줄을 서 있었던 것 같다. 그래도 여유를 부리며 천천히 줄 끝에 서서 가지고 간 책을 읽기 시작했더니 열한 시쯤부터 빗방울이 후둑후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마침 우산도 없었던 나는 손으로 머리를 간신히 가리며 삼십 분쯤 서 있었는데, 이미 예정된 시간은 넘었지만 비가 오기 시작했으니 잠시 입장권 배부를 중지하겠다는 주최측의 안내방송을 듣고는 뭔가 대책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내 옆에 서 있던 일본 여자아이들 말마따나, 비가 오기 시작했으면 오히러 퍼뜩 배부를 해야할 것 아닌가? 아무튼 앞에 혼자 서 있는 아주머니에게 우산에 머리만 좀 넣어달라고 부탁을 하고, 그 뒤로 우산 안에서 왜 우리는 여기에 이렇게 서 있게 되었는가를 계속 이야기했다. 이천번대의 입장번호가 적힌 종이조각을 받아들었을 때는 열두 시 반, 굳즈를 산다는 아주머니와 함게 줄을 서서 다시 한 시간, 그 뒤로 막대기처럼 뻣뻣해진 다리를 끌고 둘이서 하라주쿠로 나간 다음 대충 점심을 먹으며 계속 시간을 때웠다. 앉아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더니 다시 키 크고 어여쁜 언니들이 두 사람 옆에 앉아서 이야기에 끼어들었는데, 두 분도 이벤트를 보러 왔다고 한다. 두 분은 탑 팬.

집합예정시간인 네 시 반에 다시 요요기공원으로 돌아갔더니 대략 발 디딜 틈도 없는 상태. 결국 입장권 순서대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인가를 모두가 의심하는 가운데, 표면적으로는 입장권 순으로 끊어서 들여보냈지만 입장권 번호는 거의 대부분이 확인 안 된 상태였으리라 짐작된다. 나는 대충 프레스석 바로 뒤에 서 있었는데, 앞에 있던 기자들이 너무 열심히 무대를 쳐다보는 바람에 많이 가려서 안타까웠다. 빅뱅은 네 곡쯤 부르고, 여전히 지디탑은 일본어가 전혀 안 되고, 어떤 애는 목소리가 안 나오고 그랬다. 재미는 있었지만, 굶주린 상태에서 뭔가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들어갔더니 전채만 주고 다시 집에 가라고 하는 대충 그런 기분이었다. 하지만 아마 앞쪽에서 봤었다면 기절할 정도로 행복했을 게 분명하다 여겨진다. 방송국 카메라가 몇 대 와 있는 걸 봐서 오늘 아침에 혹시나 텔레비전을 틀어봤더니 몇 군데서 다뤄준 듯 하다-늦게 일어난 내가 본 것은 후지 테레비의 '도-모 키니나루'. 앨범이 일위를 했으면 좋겠다는 승리의 멘트와 사흘째 그 소리를 듣는다는 대성의 쯧코미도 내보내주었다. 방송국 추산으로 인원은 대략 팔천명쯤 모인 모양. 그리고 니혼테레비의 어떤 아침 방송에서는 일기예보 배경음악으로 가라가라고를 PV 앞부분과 함께 틀어주었다.

어제 이야기를 나눈 사람들, 그리고 앞뒤양옆에서 떠들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대충 종합하면, 사실 다들 어디서 이렇게 사람들이 모였는지 궁금해하는 모양이었다. 누군가는 한류에서 들어온 사람, 아이돌 팬이었던 사람, 힙합/랩을 듣던 사람 등 여러 군데서 팬이 생겨서 이렇게 다종다양한 사람이 모인 게 아닌가 분석했다. 사실 내가 만난 아주머니는 한국 드라마 팬이었는데 버라이어티를 보고 대성 팬이 됐다가 지용 팬이 된 사람, 그리고 어떤 언니는 클래지콰이나 소규모 등등을 듣다가 빅뱅 앨범 스탠드업을 듣고 완전히 반했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빅뱅은 아이돌이 아니다 아티스트다'라며 그들의 앨범을 추켜세우는 대충 그런 분위기였다. 아라시 콘서트에서 본 적 있는 전형적인 팬 소녀들도 물론 볼 수 있었다. 나는 가라가라고 좋아하는데, 의외로 마이 헤븐에 대한 반응은 아주 좋아서 어떤 사람들은 '1집 싱글이 완성도가 너무 높았다'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왜 일본에서는 거짓말이나 하루하루 같은 노래를 안 부르고 가라가라고 같이 다소 특이한 곡을 부르느냐고 관계자도 아닌 나에게 묻기도 했다. 대개 사람들은 '얘들 음악은 나마를 들어봐야 한다'라고 주장했지만, 나는 의외로 나마에 대한 반응은 그냥 그랬다. 그도 그럴 게 일단 자리가 꽤 멀어서 지용이 썬글라스가 보라색이었는지도 몰랐을 정도. 그리고 내가 눈으로 지용일 쫓을 때마다 그 자리에는 이상하게 승리가 서 있었다... 그리고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 대성 팬이 생각보다 많아서 놀라기도 했다.

문화연구쪽 발표를 들으러 갔더니 오디언스 연구의 일환으로 자니즈 팬 연구를 하는 사람들도 있던데, 나도 빅뱅의 일본 팬들에 대한 연구나 할까라고 공연장에 서 있으면서 잠깐 생각했다. 그러면 내가 별로 안 좋아하는 필드워크도 신나게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아주 잠시동안 팬질에 몸을 담았던 과거를 생각해보면 내 인권이나 삶의 질을 위해서라도 필드를 뛰는 것은 아무리 연구를 위해서라도 바람직하지 않을 것 같다. 지쳐빠진 상태에서 방 주인과 만나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키면서 이렇게 끝난 하루를 돌아보며 나는 어차피 쿄토로 돌아가야 하기도 하지만 텔레비전이나 열심히 챙겨보며 응원하겠다고 다짐했다. 오구라 상도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하고, 후지 테레비도 꽤 밀어주는 듯 하니 한동안 텔레비전에서 또 볼 수 있겠지 싶다. 8월 18일인가에 일본에서 정규앨범도 나온다고 한다. 

by loki | 2009/07/09 11:44 | 두서없는 잡담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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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스파게튕 at 2009/07/09 23:13
저는 한국에서도 대성이 혼자 버라이어티에 나온 거 밖에 본 적이 없었는데 일본와서 티비 나와서 노래부르는 거 보게 됬어요;; 뭔가 다양한 팬을 불러모았다니 앞으로 일본에서 어떤 식으로 활동할까 기대되네요~ 퍼포먼스가 멋지긴 멋지더라구요^^
Commented by loki at 2009/07/11 11:26
그랬군요! 당장에 다음 주에 엠스테에 출연을 한답니다. 놀랐어요.
저도 기대됩니다 헤헤헤. ^_^
Commented at 2009/07/12 23:00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loki at 2009/07/14 21:14
쿄토에 계시는군요!! 반갑습니다 ^_^ 쿄토 생활은 어떠세요? 저도 반가워요. 블로그 구경도 잘했구요.
금요일에 또 텔레비전에서 볼 수 있는 모양입니다. 저도 즐거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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